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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심장에 남은 옛영화

영화, 내가 사랑하는 까닭




영화, 무엇이 그토록 사랑하게 만들었을까 아니,내가 왜 그토록 사랑하고 갈망하는지를 담고싶어졌다.


종합예술이라고도 불리우고, 나와 우리, 시대를 담는 그 무엇일수도 있고 우리의 상상너머를 넘나드는 이상과 꿈일수도 있다.

그많은 정의중에 나에게는 특별함이 있다. 그 특별함을 찾아 '내가 사랑하는 영화' 그 기쁨을 더 누려보고자한다. 


나에게 영화가 특별했던 첫만남이 있었다. 그전에는 시간이 나면 보는것 정도였다. 아님, 텔레비젼을 통해 보는 정도일까.

그러던 어느날 하나의 영화가 가슴에 망치를 치듯이 훅 밀치고 들어오는일이 벌어졌다. 

어떤 특별함일까? 물론, 그때당시 내가 '사람을 잃은 고통' , '죽음'을 받아들여야하는 고통을 온몸으로 싸우고 있었던 탓이리라. 아마, 그때가 처음일테다 '누군가의 죽음'을 심장으로 아파하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사람이 모두 죽는다'는 그 평범한 진리를 그제서야 뼈저리게 알게되었고 누군가의 죽음은 나의 일부를 떼어내는 듯한 고통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죽은자와의 관계깊이만큼 아픔의 크기도 다르고 그싸움에 얼마나 치열한지에 따라 극복해낼수 있는지를 판가름한다는 사실도. 


나는 너무 아파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오히려 '죽음'을 인정하지않고 그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생떼를 썼다. 

더 환하게 더 밝게 더씩씩하게 ,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나 자신'을 속이며 숨기며 살아가고 있었던 때이다. 

그런 내게 '망치'처럼 치면서 왜 죽는것을 슬프게만 받아들이냐고 물었다. 그 영화가 바로 <패치아담스> 이다. 

죽는다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면 안되냐고 물었다.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남은시간을 자신이 진짜 하고팠던 거, 미뤄놨던거 해내면서 명랑쾌활하게 죽음을 맞자고 한다. 

그리 슬픈영화가 아닌데, 나는 엉엉 울었었다. 물론, 이영화는 의술이 학문이 아니라 사람과 소통하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일이라는 것임을 알려주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여기에 내가 가 닿았는지는 모른다. 

허나, 이영화는 나의 특별함을 안겨주었기에 두고 두고 내인생에 회자되면서 '죽음이라는 무게를 느꼈던 나'를 언제나 떠올리게 하고, 또 내죽음뿐만이나라 타인의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 보게한다. 


내가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꺼낸건 바로 이때문이다. 특별함. 그건 영화자체가 줄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는 그사람만이 간직하는 그 무엇도 있다는 것이다. 나에겐 특별한 그것. 아마 이것이 있기에 오늘도 내일도 나는 '영화'를 사랑할 것이다. 

그 특별함은 '나'를 들여다보게하는 거. '나의 돌덩어리처럼 단단한 뇌를, 아무것도 느끼지못하는 심장을 망치처럼 쳐내는 그 무엇'이다. 그것이 작게는 내기분을 바꾸는일(기분전환)이될수도 있고, 고장난 내 생각과 마음을 바꾸게 하는 것이 될수도 있고, 그어떤 것에도 꿈쩍하지않는 나의 고단한 삶을 바꾸게하는 것이 될수도 있다. 


내겐 특별함이란 단순히 영화에만 한정되는 건 아닌듯하다. 사람, 사물, 책, 자연, 그 어떤 사건등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고 어찌보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 특별함과의 만남. 그것을 오래도록 간직하면서 내삶을 엮어가는일. 그것이 '간절히 사람이 되고자하는 내마음'과 일치하는일이라 나는 그리 믿는 건지도 모른다.  


최근 인공지능기술로 세상사람들이 깜짝 놀랐고 그 기술에 감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난 좀 엉뚱하다. 

난 더 간절하게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사람 그 이상을 갈망하고 꿈꾸는 것이 더 끔찍한 거같다. 더 '격렬하게'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이 되지못하게 하는 세상에 사람으로 살고싶고 사람으로 그 가치를 누리고 싶다.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살아있다는 것 그자체가 행복이고 기쁨임을 아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이런 감성의 결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살아보는 거.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아내기를 싸워야만 얻어지는 이 몹쓸 세상에, 이런 꿈만큼은 모두가 꿨으면 좋겠다.

이 꿈을 영화가 꿔준다면, 기꺼이 그안에서 멈출듯 모르게 헤맨다 할지라도 나는 뛰어들테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이영화는 본 이후로 아마 지금까지 몇번을 내 삶속에 끼여들기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매일 분노의 도로 그 어딘가를 역할을 바꿔가며 헤매고 있기때문이다. 

내인생에 최고의 영화로 그 자리를 다른 영화에게 내어주지않을듯하다. 그만큼 오래도록 그 감흥이 떠나질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데 끊임없이 돌아보게 해준다. 얼마전부터는, 영화에서 퓨오리사가 답한 '구원'에 대한 것을 고민중이다. 

구원(redemption). 오늘날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바와 다를바 없지않은가. 우리가 정작 해야할일은 <살아내기> 그 싸움을 넘어서는일이라고 말해주는 것같다. 


두편의 영화소개로도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까닭은 충분히 전한것 같다. 

이글을 쓴 이유는 오직하나다 '나를 바꾸는 영화'를 찾아 헤매고 있기때문이다. 그래서 보지못했던 오래된 영화들을 찾아 보려고 한다. 오래된 영화가 나의 간절한 사랑이 담겨지기를, 그리고 특별해지기를. 

그리고 나의 오래된 낡은생각과 고장난 심장을 거세게 두드려주길 그리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