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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로 읽는 세상/시작과 돌아보기

<제철찾아삼만리 돌아보다1> 맛을 알아가며 아픔도 채우다..




아직 2014년은 남았지만, 

돌아보는일을 멈추지 못하게되어..이왕 시작한거.. 첫걸음을 열어본다.


단순하게 한해만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맘도 무겁고.. 아프기도 하고..허탈하기도 하구..그렇다.

그래도 시작하면서 놓치지않고 꼭 내가.오래도록 기억했으면 하는것들도 많았기에..그것을 담아본다.


나는 '건강한음식이 맛이 없다'라는 정의자체를 부정한다.

아마 이말이 너무 싫었기때문에 '맛'있다 없다의 기준점을 찾으려고 애썼는지도 모른다.

나는 역으로 <맛>이 있기 때문에 건강하다 라고 생각했고 그를 안받침하기위해 열심히 제맛, 참맛을 찾아 떠났다.

그 여정은 소중한 제맛을 알게 해주게 했고 더불어 내입맛이 얼마나 기만적으로 길들여온 맛인지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그래서 한편으로는 아주 소중한 여정이였고, 한편으로는 통탄할만큼 괴로운 일이기도 했다.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시작했고, 편리함이 제맛을 변형시킨 첫번째라는 것도 배웠다.

길들여왔던 맛을 하나씩 버리기도 했다. 번거로운일도..많이 만들어냈다.

도심 한가운데 살면서.. 편리함을 버리고 먹거리를 찾고 만들고 하는일은..그래, 쉬운일은 아니지만, 또 그리 어려운일도 아니였다.


제철찾아 떠난 3년여년의 여정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제맛, 맛을 배우는 시간이였다.

이것 만큼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절대로 잊고 싶지않다. 더불어 그 누구에게도 자랑하고싶고, 모두가 그 맛을 알기를 권하고 싶다. 또한 여전히 찾아 떠나고 싶은 일중 하나이기도 하다.


맛을 배우는것은 단순히 식재료가 주는 맛으로만 평가할수는 없다.

제철, 그것을 알아가는 맛이였고, 장보가가 달라지는 맛, 번거로운 일들인 손질하기부터 요리하기까지 다 하나로 모아져서 가져다 주는 것이였다. 물론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강력한 맛은 당연 제철식재료가 제철에 자기맛을 내어놓는다는 것이다. 

그맛을 애써 찾아가는 것, 알아보는것 아마..이것이 맛의 시작이며, 전부가 된다는 걸 배웠다.

부수적으로 식재료의 영양과 맛을 손상시키지않는 방향에서 손질하고 요리하는것이다. 그래서 요리를 평가할때는 첫번째도 두번째도 재료를 어떻게 선별하느냐, 그 재료를 볼줄 아는가에서 판가름내야한다. 


많은 이들은 결과만 놓구 맛을 평가하고 겉모양새만 보고 요리를 평가하고, 그 노동(수고로움)을, 값어치를 매긴다.

나는 이러한 평가자체, 이러한 평가를 요리에 적용한다는 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요리의 평가, 맛의 평가는 오로지 하나이다. 식재료의 제맛을 살렸는가 아닌가이다. 이런 결론을 만들어낸것도 지난 3 여년간의 여정이 준 선물이기도하다. 제철이 주는맛이 제맛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던 시간들이였다. 제철을 잃어버린 식재료는 제맛도 잃고 자기값어치도 잃고 영양도 없다는 사실도 더불어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더불어 제철을 잃어버린 식재료가 널부러지게 많아진 이유도 알게되면서 이것을 통탄하고 가슴쓰려했던 시간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듯하다.단순하게 생산자의 문제로만 꼬집을순없다. 이것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로부터 발생한 것이기때문이다. 

제철을 잃어버린 식재료가 넘쳐나는 이유... 그건..우리들의 일그러진세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고 우리들의 또다른 거울이다. 


이쁘기만한줄 알았던, 일그러진 자기얼굴을 보는일 만큼 비참한일이 있겠는가! 

제철을 잃어버린식재료는 일그러진 우리들의 또다른 얼굴이고, 그것을 똑바로 제대로 바라볼수있는 눈을 가지는것이 '제맛'을 배우는 지름길 같다. 물론 너무 아프다. 아프기까지 3 여년이 걸린듯하다.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제맛에 대한 궁금증이 이제..아프다. 아마, 내얼굴같게 느껴져서 아픈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느껴가는 것 자체가 제철을 잃어간 이시대에서 느낄수있는 최고의 소중한 감정이 아닐까 싶다. 비록 힘들지만...


사실, 그 누가 아파하는걸 좋아하겠는가? 될수있으면 이 험하고 복잡하고 살아나가기도 버거운 이세상살이에.. 아파하는것 하나 더 느는 것만큼 싫은 일도 없다. 그것도 가장 기본적인 먹는문제로 말이다.


먹을거리는 나는 사물?에 비교한다면 공기와 같다라고 생각한다. 매일 먹지만, 그 중요함을 모르고, 안먹으면 죽게 할수있고, 잘못먹으면 또 죽게 혹은 아프게 할수있는 존재이기때문이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않겠지만, 먹을거리는 그런존재이다. 


너무 다양하고 풍성해서 자신이 자유롭게 선별해서 즐기는줄 착각하지만, 그렇지않다. 선택의  자유? 글쎄..내가보기에는 그런건 없다. 아니 적다. 아주 적다. 선별할 자유가 없다는 건 그만큼 먹거리가 우리세상살이의 틀안에서 세상과 똑같이 변해가고 있고, 똑같이 만들어지고 있기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없다. 먹거리에, 사람의 가치, 존중, 이런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키우고 만들어낸다. 어쩔수없이 먹는것 아닌가?...덜 나쁜것을 선택하는 것 아닌가?  정말 가장 맛있고 건강한 식재료를 우린 선별할 자유,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나?....


먹거리를 사람이 귀중하게 먹는것으로 인식했다면, 절대로 이런일은 생겨날수없는일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일인지라 먹거리생산은 사람이 돈의 중심으로 무게를 이동하는 순간,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사람의 값어치가 땅에 떨어진것처럼, 먹거리의 값어치도 바닥을 치고 있다. 이미 많은사람들이 경험했듯이, 먹거리가 우리들을 옥죄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사건을 통해 우리는 매일 마주하기때문이다. 단순히 식량파동, 먹거리파동으로 비춰지는 그런문제와는 또다른 문제이다. '먹을것이 없다'가 아니라 '사람이 없다'라고 봐야한다. 사람의  값어치, 존재..그것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제철을 잃은식재료는 아픔이다. 


사람이 사람의 본성을 잃으면 그것이 사람이겠는가?.. 짐승도 되지못하는 것 아닌가?

식재료도 마찬가지다 자기본성인 제철을 잃어버리면, 이건 식재료의 값어치를 이야기할 수 없게된다. 

철을 거스르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말 많은이들에게 사시사철 먹거리를 제공하기위해서일까?...글쎄..

절대 그렇지않다. 돈을 많이벌기위해 시작한일이다. 그것을 아무리 이쁘게 포장해도..본질은 변하지않는다. 


점점더 심해질 것이다. 왜냐면, 돈이 완전하게 지배하는 세상이니깐.. 

이사회는 점점 돈벌이를 위한 생산, 재배, 가공,유통하는 방법으로 길들여졌고 그안에서 <맛>이라고 하는 귀한 것을 잃게했다. 말그대로 <맛>이없는 식재료가 넘쳐나게 된것이다. 

제맛을 찿아나선 여정은 <맛>없는 세상을 알게한 과정이기도 했다. 

제맛을 배우는 것은 맛없는 세상을 보게하고, 맛없는 것들을 맛있다며 강요하고 있는 정부, 기업, 방송(언론) 그리고, 우리들을 보게한다. 이것이 얼마나 아픈 우리들의 얼굴인지를 보게한다.


맘껏 아파하련다. 아파하기라도 하면...그것이 희망으로 피어날지..모르는일.. (그렇게되길 매일 주문을 건다..)

아파하지도 않았던 날들보다 아파하며 맛없는세상을 보는일..이 힘들지만, 아파해야 한걸음 나아갈수있을듯하다.

얼만큼 아파해야하는지..얼마나 아파해야하는지.. 그 답을 찾을지는 모르겠지만.. 아파하다 도망치지않기를.....나는 간절하게 바란다. 

제맛을 배운 소중한 이길을..또 누군가 함께 걷는다면, 아니 걷고자한다면.. 그리고 이미 누군가가 걸어갔다면.. 그누구도 피할갈수없는 아픔.. 

그 아픔에..더 깊숙히 더 깊숙히..발을 내딛어 본다. 

그것이 내간 선택한 지난 3년간 제철찾기의 결과이고, 배움이고 가야할길이라고 믿는..피할수없는  그 어느..한길목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읽은 신문기사를 싣는것으로 돌아보다1를 마감한다. 


지난17일자 경향신문 어느 한 지면에서 성정모 상파울루 감신대교수가 한말이 가슴절이게 다가왔다.

"내 인간성을 부정하고 있는 체제를 부정할때 인간성의 존엄성을 회복할수있다" " 그 인간성을 부정하고 있는 사회체제에 저항하지않게되면 내 인간성을 포기하게되는것" '"우리의 도전과제는 인간적개념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경제제도를 창출하는것" 


지금의 먹거리의 실상은 우리사회가 만든 결과물, 우리사회를 바꾸는데..힘을 쓰지않는다면 우리의 먹거리는 근본적인 치유를 할수없다.


 '맛있고 건강한 식재료'를 진정 자유롭게 선택하고자 한다면, 세상을 보라! 

그리고 그 세상의 한가운데..서서 자신을 보라!


이것이 내 자신에게, 절절하게 말하고픈, 

말해야하는 간절한 이야기이고, 

그러하기위해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아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