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출로> 찾기/오늘을 노래하다

<위로공단> 일하는 사람의 가치, 우리삶의 가치를 묻는다.


<위로공단>은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먼터리 영화이다. 

어제와 오늘의 일하는 사람들과, 캄보디아 노동자들을 담았다. 

시대를 뛰어넘고, 나라를 넘어서 '일하는 사람'의 가치를 오늘 우리들에게 묻는다.


우리는 일하며 평생을 살아간다. 그 노동의 가치를 찾는 문제는 '우리들 삶의 가치'를 찾는 일과 같다. 

그럼에도 과거에서 오늘까지 우리 일하는 사람들의 지위는 밑바닥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영화는 잔잔하게 그리고 무겁게 묻는다.


우리 삶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하고 제공하는 일하는 사람들, 그들은 우리들 자신이다. 그럼에도 우리자신조차도 남처럼 아니 나와 다른사람으로 생각하고 밑바닥 인생으로 그리 존재하게 한다. 


우리스스로에게 묻고 답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때문에 '일'을 해야하는지, 그 일이 보람에 넘치는지 그리고 세상을 모든것을 생산하는 일하는 사람은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하는건지를..

결국, 일하는 사람이 받는 대접은 바로 우리가 받는 대접이기때문이다. 우리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스스로를 하찮게 대하는 순간, 우리들 삶도 산산히 무너진다. 일하는 사람은 우리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없이는 우리는 한순간도 살수없기때문이다. 그들의 노동, 우리들의 노동이 있기때문에 우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걸 우린, 배워야 한다. 


노동하는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를 우리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으면 , 일하는 사람들의 대접은 절대로 바뀔수가 없다. 일하는 우리가 정말 분노해야 할것은 우리스스로 '일하는 우리'를 귀하게 여기지않는 것 아닐까? 그래야 일하는 사람을 '사람이하'로 대접하는 오늘을 분노하며 더 뜨겁게 싸우지 않을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상은 '일하는 사람'을 '돈'을 위해 삶이 목적이 되길 바라고 있다. 부품처럼 살기를 바란다. 사람이여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사람의 존엄, 가치를 물으면 물리적인 탄압과 제약이 상상 그 이상 강력하게 무자비하게 들어온다. 그 싸움은 너무나 힘겹기만 하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러하고,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이 얼마나 비참한 우리들 삶인가?

노예로 살기 바라는 자들에게 일하는 사람들이 기본권리를 요구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정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싸움에서 우리가 자꾸 힘겨워지는 건 , 우리스스로가 '노동의 가치', '일하는 사람의 가치'를 내 팽개쳤기때문이다. 


나의 노동으로 그 누군가는 살아가고, 나도 남의 노동으로 삶을 이어간다. 일생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우리에게 '일'은 무엇이며,  '일하는 사람'의 사회적 대우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묻고 따져야 한다. 

그것이 허망하게 '돈'을 쫒아 미친듯이 살아가게 하는 이시대에 '사람의 가치'를 찾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이 영화는 우리들 삶을 묻는다. 우리들 노동을 묻는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 가치를 묻는다. 

일하는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를 묻는다. 그 가치를 회복하는일, 그 가치를 스스로 찾아가는일 (세상은 절대로 거져 줄것 같지않다.) 이건, 희망이다. 하루가 잔인한 우리들 삶을 바꿔줄 희망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대접받으며 사는 일이 왜이리 힘겨운지 모르겠다. 그런 오늘이 잔인하다. 우린, 일하는 우리를 하늘처럼 떠받들어 줄것을 원하지 않는다. 딱! 사람만큼만 대접받길 바래. 그것을 해줄수 없다는 세상을 향해, 그리고 그런 세상에 길들여진 우리자신을 향해 더 깊숙하게 더 날카롭게 외쳐야 한다. '사람으로 존중받고 사람으로 일하며 사람으로 대접받고 살아가는 삶을 바란다'고..





 <위로공단>은 역사 속 신념을 잃지 않고 일했던,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위로공단>이 비추는 1970년대부터 2015년에 이르는 세월 속엔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처지를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게 하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 그리고 눈물이 배어있다. <위로공단> 속에서 스치듯 지나간 그 역사의 현장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


1) 동일방직 노동자 투쟁
동일방직 인천공장은 전체 1,300명의 노동자 중 1천 명 이상이 여성인 사업장으로서 이미 1946년에 노조가 결성되었으나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않다가, 72년 한국 최초로 여성 지부장 주길자를 선출한 이래 도시산업선교회 등의 지원을 받으면서 활발한 노조활동을 진행해왔다. 76년 7월 23일 노조지부장 이영숙이 경찰에 연행된 틈을 타 회사 측의 사주를 받은 고두영이 회사 측 방침에 순응하는 대의원 24명만을 모아 대의원대회를 열고 자신을 지부장으로 선출케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수백 명의 여성 조합원들은 즉각 농성에 돌입, 회사 측의 처사에 항의했다. 농성조합원을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이 투입되자, 70여 명의 조합원들은 작업복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저항했으나 경찰은 곤봉과 주먹을 휘두르며 이들을 무차별 연행, 40여 명이 기절하고 14명이 부상하는 등 현장은 삽시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한편 ‘동일방직분규 수습대책회의’의 합의사항에 따라 이총각을 지부장으로 하여 새롭게 구성된 집행부는 78년 2월 21일을 대의원 선거일로 공고하고 준비 중이었는데, 선거 당일 회사 측에 매수된 남성노동자 4명이 투표장을 기습, 부근에 있던 여성 노동자들에게 똥물을 끼얹으며 노조 사무실을 습격, 조합원들을 집단 폭행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를 방조하고, 전국섬유노조는 3월 6일 동일방직노조를 사고지부로 처리, 이총각 지부장 및 총무부장 등 4명을 제명했으며, 회사 측은 124명의 조합원을 무더기 해고시켰다. 

2) YH무역 농성사건
1979년 8월 9일부터 11일까지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에 있던 YH무역 노동자 200여 명이 회사 측의 부당한 폐업 공고에 반대해 마포구 신민당사에서 회사 운영의 정상화와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를 주장하며 벌인 농성 투쟁 사건을 말한다. YH무역은 1966년 자본금 100만원, 종업원 10명으로 설립한 작은 가발 제조업체였으나, 가발 경기의 호황과 정부의 수출 지원책에 힘입어 1970년대 초 종업원이 최대 4,000여 명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이후 창립자인 장용호는 미국에서 백화점 사업체를 설립해 외화를 빼돌리고 은행 빚을 얻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으나, 1978년 제2차 석유파동 이후 가발산업의 후퇴와 수출 감소 등으로 인해 회사 운영이 어려워지자 노동자를 500여 명으로 줄이고, 이듬해 4월 폐업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폐업 철회와 임금 청산, 고용 승계를 위한 농성을 시작했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급기야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을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1,000여 명의 경찰이 신민당사에 난입해 폭력을 휘두르며 노동자들을 강제 연행했고, 취재하던 기자 및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당원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했다. 이로 인해 노조 집행위원장인 김경숙이 사망했고, 경찰을 제지하던 172명의 여성 근로자와 신민당 당원 26명이 강제 연행되었다. 

3) 구로동맹파업
대우어패럴 노동조합 김준용 위원장의 구속으로 시작, 노조 탄압에 연대투쟁으로 맞선 구로지역 민주노조들의 동맹파업으로,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최초의 동맹파업이자 이후 대한민국 노동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85년 6월 22일 구로 지역의 중심 노조였던 대우어패럴 김준용 위원장에 대한 정부의 구속조치가 파업의 발단이 되었다. 6월 24일 대우어패럴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는 것을 신호로 효성물산•가리봉전자•선일섬유가 즉각 파업에 돌입했고, 25일에는 남성전기•롬코리아가, 28일에는 부흥사 노조가 동맹파업에 가담함으로써 참여 노조 숫자는 총 10개, 노조원은 약 2천 5백여 명에 달했다. 또한, 동맹파업을 지지하는 노동자•학생•재야단체가 가리봉 5거리에서 가두사위를 벌였고, 농성해산 당일에는 10여 명의 학생들이 지붕을 넘어 대우어패럴 농성장에 합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조들은 모두 강제해산 당했고, 마지막까지 농성을 벌이던 대우어패럴마저 농성장 벽을 뚫고 진입한 회사 측의 보복조치로 해산, 천여 명에 달하는 노조간부와 핵심조합원들이 해고되는 등 구로동맹파업은 많은 피해를 내고 끝났다. 

4) 기륭전자 사태
기륭전자 사태는 2005년 7월 파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뒤 이어진 비정규직 해고사태로부터 시작됐다. 2005년 기륭전자에 노동조합이 설립됐을 때, 생산직 노동자 300여 명 중 정규직은 단 15명 뿐이었다. 특히 파견직 노동자들은 기본급이 법정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641,840원으로, 잔업 100시간을 일해야 100만원의 임금을 손에 쥘 수 있는 최악의 수준이었다. 노조는 이에 대응해 점거농성과 파업을 벌였고 그 해 10월 기륭전자는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으나, 오히려 생산라인을 도급으로 전환하고 80여 명을 해고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에 노조가 삭발, 단식, 고공농성등을 벌이며 정규직화 투쟁을 지속하면서1,900여일동안 수십 차례의 교섭과 결렬을 반복해 왔다.

5) 캄보디아 유혈사태 
캄보디아 의류 노동자들은 월 9만원이 되지 않는 최저 임금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며 최저임금을 월 15만원 이상으로 인상해줄 것을 2013년 내내 요구해왔다. 캄보디아 정부가 주도한 노동자문위원회의 실태조사반도 월 15만원 이상으로 임금인상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의류산업 업체를 의식한 캄보디아 정부가 월 11만원 수준으로만 인상하겠다고 발표하자, 캄보디아 노동조합은 총파업을 감행했다. 노동자들의 총파업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자 한국, 일본, 중국 업체들은 자국 대사관을 통해 캄보디아 정부에 사태 해결(강경진압)을 촉구하였다. 특히 한국 대사관은 캄보디아 당국에 서한을 보내 한국 업체에 대한 보호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후 2014년 1월 2일, 노동자들이 한국 의류업체 약진통상 앞을 행진할 때 캄보디아 정예 특수부대가 노동자들을 습격했다. 무차별 구타와 폭행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5명의 승려를 포함한 10명이 연행되었다. 폭력 진압이 자행된 다음 날인 1월 3일, 캄보디아 헌병대 및 경찰은 노동자들에게 실탄을 발사했고, 이 총격으로 5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이틀에 걸친 진압으로 체포된 23명의 노동자와 승려, 활동가들은 지금까지 어디에 구금되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 DAUM 영화 소개에서 


영화는 방직노동자의 이야기부터 감정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노동자의 어제와 오늘을 담았다. 

그리고 캄보디아 의류노동자들도 담았다. 노동자는 지구 어디에 있든 똑같나보다. 왜? 노동자들의 도움없이 삶을 영유할수도 없으면서 노동자들을 대접하는 태도는 그리 함부로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스스로 '우리의 노동'을 , '일하는 자신'을 우습고 하찮게 보기때문일까? 

그래서, 그리 함부로 대접해도 당연한걸까?


동일방직노동자들에게 똥물을 끼얹는 사진을 보자, 가슴이 미어졌다. 기륭노동자는 8년간 기나길고 험난한 싸움을 했다. 그리고 복직되었다 그 기쁨은 잠시뿐, 회사는 야반도주를 했다. 캄보디아 노동자는 최저임금을 요구하다 실탄발사로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 장면을 보다 보다,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도대체, 노동자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성실히 일한 그들이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는것이 그 무슨 큰 범죄라도 되는듯이 이 사회는 요란하게 떠들며 범죄자 취급하며 못잡아먹어 안달인지 모르겠다. 


그 누구든, '일하는사람들의 노동'으로 일생을 도움받으며 자신의 삶을 영유할 것이고, 나의 노동이 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것이다. 우린, 그렇게 살아간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순간도 노동하는 그들이 없이는 우리삶은 없다'는 그 사실을 잊지말아야 한다. 


'노동하는 자신'을 더 사랑하고 아끼자! 

이영화가 간절하게 하고픈 말인듯 싶다. 

우리가 노동하는 자신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지않는다면, 이사회에 우리존재를, 우리가치를 이야기할 그 누구도 없기때문아닐까? 여기부터 우리삶의 가치는 시작되는건 아닐까? 


돈이 목적이고, 삶이 수단이 되어버린 우리시대에, 사람의 값어치, 노동의 값어치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일하는 사람이면 모두다 보았으면 좋겠다. 많은 곳에서 상영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뿐이다. 





덧1. 감독 임흥순. 사진은 Daum 영화 소개에서 가져왔음. 


덧2. 나는 노동자, 농민이 더 많이 예술공간에 담겨지길 바란다. 우리가 보고, 즐기고 느끼는 그 어떤 공간에도 일하는 사람들의 삶이 담겨지길 바란다. 그건, 또다른 나의 삶이기때문이다. 그들의 노동하는 일상이, 그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켜내기위해 싸우는 그 순간도, 울며 불며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전해졌으면 좋겠다. 정치인들의 일거수 일투족 말고, 연예인들의 시시콜콘한 가십거리말고..세상을 채워내고 있는 우리들 이야기, 노동자, 농민의 이야기가 보다 많은 공간에 담겨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무엇보다 귀중한 이야기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