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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로> 찾기/오늘을 노래하다

<카트>의 절규, 우린 정말 듣고 사는걸까?




비정규직의 절규,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

영화는 이것이 주제이고 이것이 목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곳곳에 숨겨진 노동자들의 숨막히는 싸움, 모든것을 걸어야만 오직 한걸음 나아갈 수 있다는 오늘을 보았다. 


비정규직노동자는 '사람'이 아니고 '부품'도 되지못한다. 다 쓰지?도 않았는데...버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합리한 문제를 지적하고 그 문제를 풀어달라고 이야기하면, 이제부터는 목숨을, 아니 모든것을 다 걸고 싸워야 한다. 그 '들어달라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말이다. 


사용자들의 회유와 협박, 그것은 영화에서보다 더 잔인하고 더 살벌하다. 

그 잔인함에 대해서는 영화가 현실보다 녹녹하다. 현실은 절대로 '비정규직' 아니 '일하는 사람들'의 편을 그 누구도 들지않는다. 그에 비해 회사측(사용자측)을 법도 정부도 힘껏 양껏 도와준다. 공권력과 물리력을 동원해서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한 권리요구'를 무자비하게 짓밟는다. 그 싸움에 버틸자가 없을정도로 ... 어디 그뿐인가? 이들의 이야기를 그 누구도 제대로 전하지도 않는다. 


우리들도 그래서 '우리자신에게 피해가 있느냐 없느냐'만 따질뿐, 이들의 절박한 이야기를 외면한다. 

4명중 1명이 비정규직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얼만큼 우리자신의 절박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걸까?



이영화의 '일하는사람'들의 소망은 아주 소박한 것이였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아달라' 이것이였다. 어째서 '일하는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낼수없게 되었고, 투명인간이 되었을까?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오늘은 '일하는 사람'이 사람으로의 값어치를 절대로 가질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일만해야하는 것이지 사람의 존재감으로는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잔인한 세상인가?

우리가 발딛고 살고 있는 세상이..지금..그러하다. 


또, 영화는 '일하는 사람'임을 목소리 내기 시작하면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를 보여주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일하는사람들의 목소리'는 '투명인간의 목소리'로 되였다. 

영화는 많은 부분을 다루었지만, 그보다 더 잔인했다. 기간도 한달 두달싸우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였다. 최소 1년이상이 걸리고 태반이 5-6년을 싸워야한다.  싸움의 끝이 보여지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였다. 이 절박한 싸움이 기간만 긴것이 아니였다. 기만적인 회유와 협박을 밥먹듯이 했다. 거기다가 공권력과 물리력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짓밟는것도 당당하게 했다. 

이것이 어찌 가능했겠는가?  법이 '일하는사람'의 편이 아니기 때문이며, '정부'가 '일하는 사람'의 편이 아니기때문이다. 

노동법이 있어도 무용지물이되게 만들었기때문이다. 



소소하게 지나간 영화의 한장면 한장면은.. '일하는 부품도 되지않는 존재'가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자기권리를 말하기 시작하면 그 싸움은 기나긴 싸움을 예고하는 것이고, 그 싸움의 끝의 승리는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도 싸워야 한다. 그래도 말해야 한다. 사람이니깐, 사람으로 대접받는일은 당연한 권리이니깐.. 

억울해서 싸운다. 그리고 사람이기 위해 싸운다. 

'일하지않고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이 세상의 주인임은 분명 말할것도 없는 진리'이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지는 못한다. '일하는 가치, 사람의 가치, 그것을 이미 땅바닥 아니 땅속 지하에 묻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이름이 바로 '비정규직'이다. '일은 하되, 사람으로서의 기본권리는 요구하지 말라!'가 비정규직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그렇지않고서야 어찌 이들의 이 소소한 요구가 이리 긴시간이 흘러야했으며, 그것도 다 이루지 못했단 말인가?


우리 세상은 어제도 그러했고 오늘도 이러하며 내일도 그럴것이다. '비정규직' 그 이름이 있는한 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고 만들어내는 사회가 있는한 우리는 이렇게 투명인간처럼 싸워야만 한다. 너무나 잔인한 비극이다. 


그누구도 들어주지않았던 '일하는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임을 깨닫기까지 영화를 보고나서도 한참이 걸렸다. 

억울하고 잔인해서 눈물이 가슴팍에서 머리끝까지 채워지고도..  분이 가시지않았다. 


비정규직노동자의 한 많은 목소리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절박한 목소리임을, 

그리고 그 목소리에 이제는 사회가 제도적으로 안받침해주는 일만이 이들을 그리고 우리를 진심으로 위로하는 일이 아닐까? 



영화는 아니 현실은 너무나 아팠지만, 이들이 싸움을 준비하며 '서로가 하나된 순간'만큼은 너무나 행복해보였다.

그 순간처럼 '일'하며 행복해하고 '일'하며 보람을 찾는 그런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 


너무나 잔인하고 고통스런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이 우리사회에서 영영 없어지길.. 더 절절하게 바란다.  

영화를 보는 모든이들이 이 간절한 소망하나를 가슴에 품고 현실로 바꾸는 힘으로 꼭!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