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1. 14:49


<행복까지 30일> 이영화는 인도영화이다. 인도영화는 독특한면이 있다. 그간 몇편 안되지만 인도영화를 보아왔던 것중에, 단연 으뜸은 '외계에서 온 얼간이' 가 아닐까. 구성면에서는 엉성한 면이 있지만, 전하고자 하는 '종교'에대한 여러가지 문제점을 위트있게 그러면서도 '뾰족'하게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을 보면서 속시원하게 웃으면서 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런 기대감일까. 물론, 감독이 달라 어떤 것이 담길지 사뭇 궁금했다. 

또, 개인적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역사를 담은, 사회상을 담은 영화는 신경써서 보려고 한다. 

단순하게, 영화라는 기계적인 감각말고 영화속에 담겨진 그사회상을 만나고프기 때문이다. 최근 아일랜드에 관한 영화도 

몇편 보면서 아일랜드의 역사가 궁금해졌고, 또, 이란영화 몇편을 보면서 이란사회에 대한 편견도 거두게 되었다. 


여전히 영화가 가진 한계가 많지만, 그래도 현실을 기초해서 그려내는 예술작품이라고 했을때, 그 현실을 이해하고 또 그 현실에서 비추어지는 자기삶, 우리들 삶을 들여다 본다면 더할나위없는 감상법이 아닐까.


어쨌거나, 맑은 인도아이들의 웃음이 너무 좋아 보게된 영화. 

하지만, 이 영화를 소개하는 여러 신문기사와 인터넷기사를 볼땐 다소 씁쓸하다. 

왜냐면, '힐링'이 되는 영화라고 소개하기때문이다. 이영화는 '힐링'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단언컨대 ,절대 힐링이 되지않는다. 왜 힐링되는 영화라 소개하는지 의아하다. 도대체 어디서 힐링이 되는건지도 갸우뚱일뿐이다.


거기다가 더 불쾌한건, 마치 가난한 아이들이 피자한조각 먹겠다고 고된 노동을 한달여 하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우리들사회의 아이들보다는 못하다는 생각에, 즉 우리아이들은 그에 비하면 행복하네 하는 비교우위에 있다는 '자만'과 '비하'가 깔린듯한 아니 노골적으로 이들을 맘껏 비웃는말같아 사실 '힐링'(치유)라는 말이 다소 신경질 적으로 다가온다. 


모르겠다. 그 누군가에게는 이아이들의 맑고 깨끗한 웃음만으로도 힐링이 된다고 하던데. 나는 이 아이들 맑은 웃음사이로 흘러 스미는 사회현실이 가슴시리게 아팠다. 아픈 사회현실에 비해 너무나 맑고 깨끗한 인도아이들의 눈망울과 웃음소리는 여전히 귓가를 스치지만 그 사이로 흐르는 아픔 또한 그만큼의 무게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맑은 웃음만큼이나 도드라지는 사회현실과 모순을 더 강렬하게 보여주려고 했던 듯하다. 



영화이야기를 소개하자면, 

주인공은 인도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이다. 이리 맑은 눈망울과 웃음으로 하루하루를 재미나게 개구장이 처럼 살고 있었다. 영화에서도 이 아이들의 이름이 소개되지않는데, 이 두형제는 '까마귀알' 형제라고 불린다. 

그건, 공터에 큰나무가 있는데, 거기에 까마귀가 터를 잡고 알을 놓는데, 까마귀를 속여 까마귀알을 챙겨먹곤 하기때문에 불리워진 별명이다. 어느날, 그 공터에 피자집이 들어서고 까마귀가 알놓던 나무도 배여졌다. 매일 놀던 공간이 사라진 것도 아쉬운데, 낯선 으리으리한 가게가 생긴다니 궁금하기 짝이없다. 


그러던차에, 가난한동네에 TV를 보급하면서 어머니와 할머니 몫으로 두대나 타왔다. 텔레비젼을 보다가 '피자'광고를 보게되면서 그 맛이 궁금해졌고 그맛을 보기위해 여짓껏 푼돈으로 모아왔던 노동에서 다양한 노동들을 섭력하며 비싼 피자를 먹기위해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정말 별별 일을 다한다. 대략 초등학생 4학년, 1학년정도 되는 나이인데, 아이에게 이런 노동을 시켜도 되나 싶을정도로 '돈'이 되는거면 물불 가리지않고 아이들은 노동했고, 또 딱히 걸리는 것없이(거리낌없이) 아이들을 노동시키고 돈을 지불했다. 


물론, 아이들의 해맑음은 이루 말할수가 없다. 다만 안타까운건, 아이가 노동하는 것이 이상하지않는 것이 답답했고, 또 아이들이 노동한 댓가(값)가 너무 헐하다것도 참 답답했다. 아니 몇시간을 노동해도 '피자'하나 사먹을수 없다면 그건 정말 이상한 사회, 잘못된 사회인거다. 이 아이들은 무려 30일을 노동한다. 이러니, '행복까지 30일'이라는 제목은 어찌보면 비틀어도 너무 비튼 제목일수밖에 없다. 


어찌보면,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사회 같지않은가!  수십년을 죽도록 일해도 가질수없는 집 그거 아닐까싶다. 

아니, 한시간 노동해서 밥한끼 제대로 해결할수 없다는거 그걸 비꼰걸까? 

어쨌든 머리속은, 헐값에 내 노동력을 죽어라 바치지만 늙어죽도록 내집하나 가질수 없는거 그것일까? 그런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아이들 이야기가 아닌, 비정규 삶,불안한 노동을 하며 살아내기를 하는 우리들사회를 비꼬는 건 아닐까.



피자때문에 여러 노동을 해야했고 오랜시간 노동을 해야했던 아이들은 할머니가 그까짓껏 하며 피자홍보지에 그림대로 만들어준 피자를 기대반 설마반 이런맘으로 맛을 보았으나 아니라며 핀잔을 준다. 

당연히 모양만 따라했을 뿐인데, 어찌 맛이 같겠는가! 또 아이들은 피자맛을 본적이 없는데 그맛을 또 어디에 비교할텐가!

다만 진득하게 늘어지지않는다는 것이 아이들의 평이였다. 


이날이후로 더 굳게 '피자를 기어이 먹고 말리라' 다짐하는 아이들. 

더 열심히 일찾아 헤매고, 돈되는 여러일을 한다. 급기야는 애지중지한 강아지까지 팔려고 한다. 

그러다, 피자를 살만한 돈이 마련되었다. 어찌나 기쁘던지. 그돈을 들고 피자가게에 들어서려는데, 관리자가 막는다. 저리가라고 한다. 아이들은 고민한다. 돈이 있는데 왜 우릴 쫒아내는거지? 아마 옷이 더러워서 그런가보다 하며 다시 열심히 노동해서 '새옷'을 사입고 피자가게에 가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아이들이 못먹는 이유가 되지 못했다. 새옷을 입고 당당히 떳떳하게 들어섰지만, 관리자와 피자가게 책임자에서 뺨을 거세게 맞는것으로 대접받았다. 



이것이 파장이 되어 언론에 나갔고, 연일 방송되면서 피자기업주는 이를 수습하려 고민한다. 

이때 등장하는 가난한 동네 대변자라는 의원과 동네청년들의 태도가 참 기가차다. 가난한아이가 차별받고 돈이 있는대도 피자를 팔지않은 것을 매개로 돈을 벌려고 한다. 이장면도 내내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근본적인 가난이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파헤치려기보다는 가시적인 차별만 부각시켜 정치적으로 또는 돈벌이만 하려는 심보는 어디가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또 답답해진다. 


그무렵 아이들은 무슨고민을 했을까. 눈물을 깊숙하게 머금은 형은 무슨생각으로 꽉 찼을까.

피자먹을 생각에 열심히 노동하느라 몰랐던 것을 마주하게 된걸까. 급작스런 할머니의 죽음은 이들을 더더욱 슬프게했다. 

거기다가 한창 사회문제로 자신들이 뺨맞고 쫒겨난 일이 연일 방송에서 떠들자 이들은 도망쳤다. 

부끄러워서일까. 이제는 관심이 없어져서일까. 아님, 가난한자들에게는 돈이 있어도 불평등하다는 걸 알아버린걸까. 

물론, 영화는 일언반구 안한다. 



어쨌던,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피자사장으로서는 아이들을 데려다 피자를 먹여주고 또 공짜로 언제든지 먹을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까지 한다. 아이들은 이 상황이 무척이나 낯설지만, 커다란 접시에 놓인 뜨끈한 피자를 선사받는다. 

그리고 피자사장이 먹어주는 피자한조각에 크게 베어문다. 


그리곤, 아이들이 클로즈업되면서 

마지막 말을 한다. 

"너 맛있냐?"(형이 묻자), (동생이 답하길) "아니, 느끼해. 할머니가 만들어준 피자가 더 맛있어"

이렇게 말하곤 끝난다. 저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장면이 저리 맑은 이유다. 



혹여, 우리들의 행복은 이리 허망한 것에 목숨내걸고 노동하고 있는건 아닐까.

도대체,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노동해서 가져갈 '행복'이란 무엇이 되야하는지 묻고 있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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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철찾아삼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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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21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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