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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로> 찾기/오늘을 노래하다

<동주> 우린, 무엇으로 이시대를 살고있는 걸까?





<동주> 윤동주와 송몽규 두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이 영화는 어찌보면 송몽규가 부른 '동주'를 써내려간 영화일지도 모른다. 이름은 내가 아닌 남이 부르는 것이므로.

그래서 영화는 송몽규에 더 강렬한 촛점이 맞춰져있는듯 하다. 


간만에, 영화를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건 단순히 이 두청년에게 가해진 일제강점시절에대한 분노때문이 아니다. 

시대는 개인의 삶을 잠식한다. 개인이 원하든 안하든. 그 의지와 상관없이 시대는 삶을 투영하고 담게되어있다. 그래서 한시대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시대가 보이고, 그시대를 보면 그시대사람들의 삶이 보인다. 

그리고 그시대를 어쩔수없이 살지않고 바꾸기위해 뜨겁게 살아간 사람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심장에도 기어이 살아숨을 쉰다. 

그것도 거세게 뛴다.  그 뜨거움이 무엇일까. 그 질문이 내내 떠나지가 않는다.  


자신이 가진 모든것을 항일에 쏟아내었던 송몽규, 그를 지켜보았던 동주. 

동주는 '부끄러움'을 안고 살았다. 자기성찰의 기초의 기초인 부끄러움. 그것이 있었기에 그의 시는 아름답고 오늘도 우리가슴팍 그 어딘가를 뜨겁게 해주는지도 모른다. 


우리시대는 '보란듯이'사는걸 원하고 그리 살려고 피터지게 산다. '남'을 이기기위해 살고 '남'을 짓밟아야 살아남는다. 그리 배웠고 그리 성장했고 그리 살아간다. 삶의 잣대요 기준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어쩔수 없는일이라며 철저하게 순응하며 돈의 노예로 자청하며 살아간다. 운명이란 있는걸까. 우리 어쩌다 이런삶을 살게되었을까.  


오늘도 외진곳에서 외롭게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돈보다 사람을, 전쟁보다 평화를 위해, 어쩔수없는 세상을 향해 자신의 삶을 다 던져 뜨겁게 사는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부끄러움'이라는 자기성찰의 중심추를 가질수 있는 것 아닐까.


부끄러움은 어찌보면 어떻게 살것인가의 진지한 자기성찰이면서 시대앞에 순응할것인가 개척할것인가를 묻는 박진감있는 내면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린 어쩔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님 어쩔수없는 삶을 기어이 바꾸기위해 살고 있는가를 '부끄러움'이라는 자기성찰의 무게로 가장 부드럽게 가장 간절하게 가장 날카롭게 묻고 있는거 아닐까.


우리,지금 펼쳐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쩔수 없는 세상이 아닌거야 

어쩔수없다며 그 기류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건 영혼없는 삶인거야

비록 바꿔지는일이 아무것도 보이지않아도, 우리삶이 버거울지라도 '부끄러움'이라는 그 무게만큼은 우리 잃지말자고

스물여덟 동주와 몽규는 그리 살았노라고 전해준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의 아품에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보는 '부끄러움' 그 자기목소리에 우리 조금만 더 솔찍해지고 더 용감해지는 그런 너와 나, 우리가 되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