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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로> 찾기/오늘을 노래하다

<후쿠시마의 미래> 한국의 미래, 그 안부를 묻는다. 우린, 감당할 수있을까?



<후쿠시마의 미래> 이영화는 후쿠시마원전 폭발이후 이주한 일본인들이 자발적으로 앞으로의 자신들의 미래를 확인하고자 체르노빌로 떠난다. 그들은 탐사를 하면서 그들이 느끼는 공포가 단순히 삶에 대한 위협으로만이 아니라 미래 자체의 비상구가 없다는 걸 확인하게된다. 


체르노빌은 사고가 난지 28년이 지났지만, 체르노빌로부터 원거리로 이주한 땅에도 여전히 방사능이 검출되고 어떤곳은 높은 수치로 확인이된다. 그뿐아니라 이주한지 얼마되지않아 백여명이 넘는사람이 암으로 죽었고, 그 2세는 현재 원인모를 여러가지 병과 증세로 고통받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한 탐사인들은 잔인한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하나씩 하나씩 담아낸다.


*체르노빌 원전 


이들이 이렇게 나서게 된데에는 일본정부가 후쿠시마원전관련 정보를 정확하게 주고 있지않다고 판단하기때문이다.

믿을수없기때문에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안전한지, 그리고 자신들의 2세는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건지..'죽음과 미래'에 대한 공포로 그들은 2011년 3월11일 그 시점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못한채 오늘을 맞고 있다. 살아도 살아있지 못하는 '공포 그 자체'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너무 무거웠고 무서웠다. 

당연히 원전이 주는 무서움은 더이상 말을 할필요가 없을만큼 인류 최악의 저주, 인류최악의 비극이다. 그리고 그 비극과 저주는 원전이 사고난 날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그 끝을 알 수없어 불안과 공포로 삶을 채워야 한다. 그 피해의 범위와 넓이도 상상 그이상이다. 세대를 넘나드는 건 물론이거니와 사고난 지역에서부터 원거리에 있어도 그 피해는 몇 세대를 거쳐서 확인되고 있고, 28년이 지난 체르노빌원전에 방어벽을 세운다고 하는데..고작 버티는 것이 100년이란다.

원전은 처리에 대한 대책도 암담하다. '원전'은 그 자체가 악마이다. 태생부터가 그 마지막 끝나는 마무리까지 저주만을 쏟아붓고 있는듯하다. 이런 원전를 우리는 얼마나 갖고 있는지. 아니,우리는 이 '필연적인 재앙'를 껴앉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두려움을 모르는 우리는, 과연 이 '필연적인 재앙'이 안겨주는 '저주'를 진정 감당할수 있을까? 


어찌보면 우린, 체르노빌, 후쿠시마보다 더 위험천만한 지역에 살고 있다. 

왜냐면 전세계적으로 가장 집약적으로 원전이 세워져있기 때문이다. 좁은땅덩어리에 24기 원전이 현재 가동되고 있고 앞으로 2040년까지 총 40기를 목표로 건설하려고 하고 있다. 

땅 면적에 비해 원전수는 세계1위이다. 이말은 무엇을 뜻하겠는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위험한 나라를 뜻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가동되는 원전마다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고, 노후원전을 막무가네로 가동시키고 있으며, 새로 건설한다는 원전은 불량부품으로 그 문제의 심각성은 이미 상상 그 이상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땅이 지금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피해, 재앙보다 적으리라고 상상하는건 오만이다.


자, 그럼 우린 도대체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현재 노후원전은 폐쇄되어야 하고, 새로 짓고 있는, 계획하고 있는 원전은 모두 중단시켜야 한다. 

더불어,가동중단을 반복하고있는 원전 또한 폐쇄시켜야 한다. 이러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건 있을수없다. 


그럼, 에너지생산, 에너지소비 어떻게 할것인가? 우리가 현재, 원전없이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기위해 감당해야할 무게는 얼마일까? 그리고 우리는 감당할 수 있을까?  

이 답을 내릴수 없다면, 우리는 비겁하게 아니, 비참하게 체르노빌, 후쿠시마의 전철을 밟을수밖에..


<후쿠시마의 미래>는 결국 우리들의 미래, 우리나라의 미래 그 안부를 묻는다. 




덧, 사진과 자료는 daum 영화, 구글이미지에서 가져옴.

영화는 현재, 인디스페이스 독립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다. 

감독: 이홍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