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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로> 찾기/오늘을 노래하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사람'이고픈 그 간절함, 당연함을 외치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 영화는 한마디로 가슴을 울리는 좋은 영화이다.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시대 가난이 주는 고통은 바로 '사람'으로 살게 하지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 누구보다 성실히 열심히 살아가려하지만 가난할수밖에 없게 만드는  세상은 '사람'으로 살수있는 방법조차 틀어막어버렸다. 그런세상에서 사람이고픈 사람들의 간절한 절규이기도하고, 우리들세상이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건지를 적나라하게 묻는 영화이기도 하다. 


비록 가난하지만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외면하지않고 함께 나누며 도와줄줄 아는 성품을 가졌지만 이들의 성품 끝자락에도 가닿지않는 가난한사람들을 대하는 사회시스템은 잔인하다. 마치 외형적으로는 가난을 구제해줄것처럼 수많은 (소위)복지정책들을 만들었지만 '자존심'조차 무너뜨리며 가난을 증명해야만 받을수 있다. 아니 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증명해야만 받을수 있는 그 무엇이라 말해야 더 정확한지 모르겠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성실한 노동자(목수)이다. 그어느날 지병인 심장병으로 인해 일터에서 아찔한 상황이 생혀 일을 중단하고 실업급여로 생계를 이어가야만했다. 실업수당이 있어야 일을 못해 생기는 생계의 공백을 메꿀수 있기에 관공서에 신청하러 갔다. 그 과정에서 생긴 이야기를 담았다. 얼마나 관료적인가도 들어나지만, 얼마나 쓸모없는(전혀 도움이 되지않는) 정책인지도 적나라하게 들어난다. 



당사자가 방문했건만 전화를 걸어 상담날짜를 잡는 것에서부터 상담자와 사실증명을 하는 것 그리고 마침내 그 수당을 받을수있는 자격을 인정받는 과정까지 참으로 비참하다. 엉뚱한것은 물론이요 기계적으로 사람을 대한다. 사람의 자존심을 마구 짓밟는다. 사람의 소리, 그 목소리를 경청하려고 하지않는다. 다니엘블레이크는 그 모든 과정을 최대한 인내심을 동원해 참아내었다 아니,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그는 행동했다. 수당을 신청하는 건물밖에 자기이름을 큼지막하게 쓰고 무엇때문에 여기에 자신이 왔는지를 밝힌다.  그러자, 그 소란이 시끄러웠는지 마침내 수당을 받을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는데 그 확인을 하는 찰나에 심장병으로 죽고만다. 



그는 실업수당이 절박했지만, 관공서에서 만난 어려운 이웃 케이티가족을 외면하지않았다. 비록 관공서에서는 그들을 매몰차게 대했고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하는 케이티의 삶을 산산히 부셔버렸다. 아이둘이 있지만 혼자인 케이티는 정말 열심히 살아내려 노력하지만 한끼를 먹는것도 어렵다. 아이들 학교는 물론이요. 전기가 끊기기까지 한다. 그 절망 한가운데서 만난 다니엘 블레이크 끝까지 자신이 할수 있는 만큼 성실히 도와준다. 가난하지만 이들이 나눈 따뜻함 그 한조각도, 그들의 복지정책에는 없다. 


아찔하다. 영화는 영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었지만, 이게 어디 영국 한나라만의 이야기일까.

전세계가 앓고 있는 치명적인 중병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제도. 그것이 바로 문제이다. 

이 문제를 바로잡지않으면서 외형만 비대한 '복지정책'으로는 성실하지만 가난해진 이들을 진정으로 구제하지도 못할뿐만아니라 설령 미봉책으로 구제한다 한들 사람으로의 존재이유, 가치를 파산당한다. 


물론, 영국은 '돈있는자'에 대해 무한한 자유와 권리를 주고, '돈없는자들'에게는 무자비한 지옥을 선사한 첫번째 나라이다. 

(어떤이들은 이것을 '신자유주의'라 말한다.) 최근에는 브렉시트 (유럽연합을 탈퇴)를 해서 시끄러운 나라이기도 하다. 

이과정에 여러가지 시끄럽고 복잡한 해석이 난무하지만, 핵심은 하나다 '유럽연합' 그 체계도 가난한자들을 착취하기는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공동체를 운운하지만, 가난한사람들은 그 공동체 그 어디에도 머물수도 쉴수도 없게 만들고 있기때문이다. 


결국은 열심히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 가난해지는가를 근본적으로 고쳐내지않으면서 화려한(문양만) 복지정책으로 이것을 입막음하는 것 아닌가! 물론, 우리나라는 이것조차 없는 최악의 지옥이라 마냥 부러워한다. 그래서, 유럽의 복지정책만이라도 우리에게 있으면 조금 더 나은삶이 되지않을까 하는 기대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하지만, 허상일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건, 무늬만 갖춘 복지정책 다시말해, 그무언가를 증명해야만 ( 자존감마저 내 영혼에서 떼어내야하는) 구제해주는 복지가 아니라 그사회에 살고있는 그 누구든, 언제든지 '사람으로 품격있는 삶'자체를 영유하고 누릴수 있게해주는 정책 그자체이다. 그러기 위해선, 오직 답은 하나다.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들에게 돌아가야할 정당한 몫이 그 누군가에게 빼앗겨  독식하게 하고 있는지를 더 따져 몰어야 한다. 


성실한데 가난한 사람이 넘쳐나는건, 그 사회가 부정의하기때문이다. 성실한 그들이 배당받고 누려야할 것들을 그 누군가가 독식하며 빼앗고 있기때문인 것이다. 그 누군가가 독식하며 빼앗을수 있는 자유가 있는한, 선심쓰듯 베푸는 그 서푼의 복지정책으로는 사람으로 사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영화는 물론, 여기까지 끌어내지는 않는다. 수많은 질문들이 떠나지않게 할뿐이다. 

사람'으로 살게하지않는 세상을 들여다보게 하고, 지금 내가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도 묻는다.

사람으로 태어났건만, 사람으로 살수없게하는 세상. 참으로 잔인하다. 

그런세상에 살면서 우린, 사람이라는 그 사실 자체도 잃어버린 건 아닐까.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1년에 2000명이 일하다 다치고 죽는다. 사람의 가치, 존재이유를 산산히 무너지게하는 '비정규직'이 넘쳐난다. 여기다가  실오라기만한 구제할 정책조차 구비되어 있지도 않다. (물론 있다한들, 무슨소용이겠는가마는. 비정규직 그 자체가 없어져야 하고, 일하다 죽을수 밖에없는 환경이 없어야 한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애리다 못해 시렸다.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지 못하는 우리사회가 미치도록 싫다.  

그래, 이미친세상에, 그래도  '우린, 사람이고 싶다' 라고 더 큰소리로 외치고 있는 <나, 다니엘 브레이크> 더없이 반갑고 더없이 소중하다. 


이 영화의 감독 '캔로치'는 .올해로 여든살이다. 고령의 나이에도 그는 자기사회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는일을 게을리하지않는다. 이미, 10여년전에,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라는 영화로 영국인이 침략하고 착취한 아일랜드독립투쟁을 담았다. 

(우리식으로 이해하자면, 일본영화감독이 일제의 조선침략과 약탈 그들의 독립여정을 그려냈다고 상상하면 된다. )


영국은 여러나라를 침략과 약탈 착취해 살찌운 나라이다. 그런데, 일제나 나찌(독일)와는 다른 대접을 받는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이 영화를 보면 그런 영국의 치부, 아니 영국의 본색이  다 들어난다. 그것을 거리낌없이 영화로 만들어 낸 감독이다.  (물론, 영화에서는 아일랜드 독립투쟁이 어떠 했는가와 독립투쟁의 성과물이 누구에게 차려져야하는지도 잘 보여준다. 일제침략과 약탈 그에 대한 저항과 투쟁을 했던 우리나라로서는 이 영화는 많은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기회가 닿는다면 꼭 보시라고 강력 추천한다.) 


그가 만든 영화를 다 보지 못해 아쉬움이 한가득이다. 그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로 2016년 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수상소감으로 "우리는 희망의 메세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다른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영화가 특별한 까닭은 바로 이러한 자기철학이 있기때문이다. 



다른세상이 가능하다는 말,  사사로운 권력에 분노한 지금, 우리들 가슴속에 불 타올라야 하는 것 아닐까.

사사로운 권력, 특혜,특권, 이런 건, 민주주의와 양립할수도 같이 공존할수도 없다.  그 누군가가 누려야하는 권리와 삶을 악랄하게 빼앗아야 가져갈수 있는게, 바로 특혜, 특권이며, 이를 누리는건 '사사로운 권력'이다. 

'분노'로 시작된 촛불, '다른세상이 가능하다'는 의지로 더 강하게, 타올라야 한다. 


촛불을 든 우리가. 바로 '다니엘 블레이크' 그보다 더 뜨겁고 사랑스럽다. 

촛불을 든 우리가 써내려가는 희망, 꿈이 더 아름답다. 


우리, 사람으로 살게하지못하는 그 모든 것을 꺼내놓고 물어보자. 어떻게 하면 사람으로 살수 있는가를.

그리고, 그 답을 모아내자. 한폭의 그림, 영화보다 더 짜릿하고 아찔하게 멋들어진 우리들이 만들어가는 세상. 

비록 우여곡절은 많을 테지만, 그래도 우린 꿈꾸고, 그래도 우린 포기하지않는다면, 그언젠가 누릴 세상엔 온전한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 되지않을까.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는 놓치면 너무 아까운 영화이다. 

올해가 가기전에 꼭 보시라고 강력 추천한다. 

비록 우리사회는 우리를 사람으로 살게하지는 못하지만, 우리자신만은 '사람'임을 잊어서도 놓아서도 안된다.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 간절함, 당연함을 들여다보게하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이시대 최고의 영화라고 감히 말한다. 


지금 우리가 두발딛고 살고있는 이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사람으로 살수 있는가를 고요하게 그러면서 격렬하게 묻는 이 영화를 만나는건, 축복이다. 많은 곳에서 두루 널리 상영하길 기대해본다. 


또, 기회가 닿는다면 '캔로치'영화제를 열어, 그가 보여주고자 했던 희망의 메세지를 한껏 볼수 있게 해준다면 더할나위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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