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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로> 찾기/뚜벅뚜벅, 사색하기

책읽기의 쓸모




책읽기, 그 오묘한 힘과 매력을 찾아가는일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더할나위없이 좋은 버릇이다. 


그 언젠가부터 책이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낯설어지고 까만건 글이요, 하얀건 종이라는 인식외에는 아무것도 머리로 들어오지않기 시작했다. 어이할꼬.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려고해도 '읽기'는 필수이고, 삶을 살아가는데도 '배움'은 필수이다. 


그럼에도 내가 몸소 고생(머리를 쓰는일)해서 내눈으로 읽고 내머리로 박터지게 사고해 내것이 되는 지식을 채우는일이 참으로 어려워졌다. 책을 설령 본다한들, 책장을 넘기는 것외에는 줄거리도 기억나지 않을뿐더러 사색이라고 하는 자기노동도 하지않는다. 열심히 책장만 넘기며 마지막장을 서둘러 덮는 것으로 나의 책읽기 수준은 만족해야만했고, 어쩔때는 그 책장넘기기마저 버거워 휘리릭 바람날리듯 넘기기도 했다. 


어이할꼬. 그러던차, 이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 싶어 책읽기 습관을 들이기위해 노력해보자며 덤벼들었다. 

물론, 지금은 책읽는것 그 자체가 너무 좋아 해야할일도 놓치기도하고 다른곳에 내리기도하고, 날을 새기도 한다. 이전에는 책한장읽기도 버거웠는데, 지금은 읽는속도도 빨라졌지만, 내용을 빠르게 파악하고 요해하는 능력?도 생겼다. 

이제는 책없이는 한시도 하루도 못살만큼 익숙하고 제몸처럼 부대끼고 있다. 



어떻게 된것일까? 나에게도 이런 신비한 능력이 생기다니.


곰곰히 돌아보니,

나의 무지(무식함)을 뼈저리게 인식하는 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닌가싶다. 

매일매일 무한하게 쏟아지는 정보홍수 속에서 수많게 내눈으로 읽고 스쳐 지나갔지만 내것이 된적이 없고, 그 정보의 쓸모는 아주 한시적이라 읽는(보는) 즉시 사라지곤 한다.  사색은 커녕, 절대 내 무지함을 채울수 없고 오히려 내 머리를 어수선하게 어지럽히고 세상을 올곧게 볼수있는 시야, 관점을 막아나선다는 것을 절박하게 깨달았다. 


그만큼 오늘날 정보라 떠도는 지식은 '하루살이'보다 더한 짧은생애를 가지고 태어나고 그 쓸모는 그 짧은 순간 소비만을 위해 자극적인 것으로만 채워지고 있기때문이다. 우직하게 사색하지않고 만들어진 자극적인 정보와 지식이 얼만큼 자기머리에 머물다 가겠는가! 

이런 낭비적인 정보가 콸콸콸 쏟아짐에도 역설적이게, 우리를 더 빈약한 머리, 텅빈머리로 세상을 살아가게하고 더 노예스럽게 주어지는대로, 순응하며 살아가게 하는건 아닐까. 그런 무서움이 들자 내머리로 뜨겁게, 치열하게 사색하는일은 내'삶'을 살아내는데 중요한 문제로 들어서게 했다. 빈머리로 어찌 사색이라는 고된 머리노동을 할수 있으랴! 


무엇부터 시작할까. 우선, 읽기습관부터 들이기로 했다. 내용까지 제대로 소화한다면 더할나위없지만, 이런 상태에서 그것까지 욕심내면 시작하자마자 금새 포기할듯해서 '책읽기' 그 자체를 생활이 되게, 삶이되게 만들기 위해 용써야했다. 


종이신문을 꾸준히 읽는것을 시작으로해서, 손에 책이 익숙해지는 것을 중심에 두고 하나씩 시작했다. 

읽은 책의 숫자가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내 손길이 가닿은 책권수 그자체로만 만족해하며 몇해를 보내야 했다. 


관심있는 분야의 책은 그나마 초집중해서 읽혀졌기에, 더할나위없이 책읽기습관들이기에 좋았다. 

이렇게 책읽기 습관이 관심분야에서 사작하니 그리 어렵지않게 (물론, 책읽는게 습관이 되질않아서 1권을 주구장창 들고 있기는 했지만) 읽어내게 되었고 책읽는 습관(버릇)도 조금씩 자리를 잡기시작했다. 우직하게 읽는 집중력이 떨어졌는데, 손에 책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니, 책에 집중 몰입하는 강도가 점점 세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관심분야와 연관이 있는 분야로 하나씩 넓혀 가게되었고 그과정에서 책읽기는 묵직한 생활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꽤 긴시간이 흘렀지만, 그 모든 과정이 기특할 뿐이다. 


혹여, 그 누군가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책읽기' 절대 늦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고, 더 늦기전에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도전해볼만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결국은 '의지'의 문제이다. 객관은 언제나 우리에게 넉넉한 책읽기시간을 주지않을 뿐더러 가장 큰 걸림돌은 객관이 아닌, 자기자신이기때문이다. 책을 읽고자 하는 자기의지만 강렬하다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좋은 버릇으로 삶의 한가운데에 넣어둘수 있다. 


세상에 휘둘리지않고 제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채움'이 있어어 한다. 그것은 현실을 옳게 통찰하는 힘인데, 거져 얻어질수 없다. 사회역사적인 고찰도 필요하고 오늘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시야도 필요하다. 그것은 다양하게 습득할수 있지만, 지금의 우리들 몸(머리)에 저장된 지식창고로는 너무나 부족하다.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채워주질 못하기때문이고, 오늘날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와 지식 또한 이 사회에 철저하게 길들여지는 부속품으로 존속하기위해 만들어 것들뿐이라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무엇이 근본문제인지도,  수많은 사회현상에 대한 자기생각과 성찰, 사색을 품게하지않는다. 


다 채워줄수는 없지만, 책은 이러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데 큰 역할을 한다. 

물론, 어떤책을 읽을 것인가가 또다른 문제로 나서고, 자기자신의 수고로운 사색(머리쓰는 노동)이 든든하게 받쳐주어야 하지만, 그것이 부족하다 하여도 책을 통해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정보지식홍수에서 벗어나 근본적이고 보다 중심적인 것들을 보게하는 눈을 가지게 해준다는 것은 틀림이없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지식이 한두개가 아니다. 그렇다고 수많은 것을 두고 헤맬수는 없다. 

무엇부터 채워야할지 사색하면서 책읽기 능력도 하나씩 채워나가면 될듯하다. 


우린, 학자가 되기 위해 책읽기를 하는게 아니다.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읽어야 한다. 

어떻게 세상을 볼것인가에서부터 어떻게 살것인가에 답을 주는 책읽기가 되어야 한다. 

세상을, 나를 바꾸는데 도움이 되지않는다면, 책읽기는 한갖 장식품에 지나지않게된다. 장식품 하나 달려고 용쓰며 책읽기를 할필요는 없다. 이미, 우리들곁에는 장식품 정보지식은 넘치고도 남는다. 그것이 우리삶을, 우리세상을 바꾸어내진 못한다. 고로 치장할필요가 없다. 


세상은 우릴, 일회용처럼 쓰다 버리는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우린 더 이악스럽고 악착같이 나와 세상을 바꾸는 당당한 주인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기위해, 나와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갖추는 책읽기는 늦출수도 멈출수도 없는 중요한 일이다. 세상의 주인으로 온전하게 서기위해서도, 지옥같은 삶을 바꾸기 위해서도 우리의 사색은 멈춰서는 안되고, 그 사색을 안받침해주는 책읽기는 더더욱 간절해 진다. 



아는만큼 세상은 더 잘 보인다. 세상이 더 잘보이는 만큼 세상을 더 멋들어지게 바꾸어 낼수 있다. 

어쩔수 없는 세상, 지옥같은 삶을 살아내는게 운명이 아니다. 어디부터 꼬였는지. 근본문제가 무엇인지. 무슨힘으로 바꿀것인지. 하나씩 하나씩 따져보자. 


우리들의 책읽기는 오로지 이것을 위한 것임을 잊지않고 책읽기를 그 누구보다 절박해하고, 자기습관이 되게 삶이되게 뼈저린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가을날, 그 시작을 해보는 건 어떨까. 

자기수준에 맞게 책읽기 그 마력, 그 힘을 하나씩 자기삶으로 옮겨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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