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침공은 어디?> 마이클무어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영화이다. 마이클무어의 영화는 독특하다. 몇편 보질 못했지만,본 영화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건 다름아닌, 자기가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오늘)을 너무나도 매섭고 날카롭게 들여다보기때문이다. 잔인한 현실을 들여다보는일은 어찌보면 '공포영화'를 보게끔 하는일일터인데, 마이클무어는 절대 그런영화를 만들지않는다. 장난기 어린 얼굴로, 그 잔인한 현실을 보여줌과 동시에, 바뀌어야 한다는, 바꿀수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전달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이클무어와 똑같은 표정으로 우리들이 사는 현실을 들여다보게하고, 그 현실을 바꿀수있다는 꿈을 꾸게한다.
<식코>와 <자본주의,러브스토리>는 미국사회를 살아가는데서 가장 큰 걸림돌, 문제점들을 영화로 담았다.
<식코>는 미국의 의료보험제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고, <자본주의, 러브스토리>는 누구의 돈을 빼앗아 누가 배불리고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각각 영화마다 스며든 '마이클무어'의 시선은 평범한 미국인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더 나은삶을 간절히 바라지않고서는 가 닿을수 없는 시선이다. '희망'이라는건, 엉뚱한곳에 있지않다. 바로 우리가 사는 삶 그것을 똑똑히 정면으로 바라보는일이 아닐까싶다. 그 현실을 바라봐야 '희망'도 쏘아올리는 법이기때문이다.
그래서, 각각 영화에서 보여주는 특유의 마이클무어식 '유머'와 '위트'는 현실을 마주하는 방법이기도하고, 그현실에서 주저하지않고 바꿀수있다는 '꿈'을꾸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니, 꿈꾸는 방법을 알기에, 그는 현실을 들여다보는일을 두려워하지않고 오히려 익살스런 얼굴로 마주하고 있는 것일테다. 영화를 보는 우리가 배울것이 있다면, 아마 이것이 아닐까싶다.
자, 그럼, <다음 침공은 어디?> 영화를 이야기해보자.
영화제목에서 알려주듯이, '침공'은 미국역사의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닌 단어이다. 인디언의 땅을 피비린내나게 빼앗았으며, 그들을 학살했고 아프리카원주민들을 끌고와 노예로 착취하며 미국이라는 나라는 탄생했다. 20,21세기 수많은 크고작은 나라들의 전쟁은 미국의 침공이 안받침했다. 그 침공의 역사, 군사력으로 남의 나라 건드리고빼앗고 때려부스는거 그만하고 미국민들의 삶을 바꾸는데 쓰라고 일침을 놓고 있다.
영화상영 내내, 마이클무어는 미국이 진짜 빼앗아와야 할것이 무엇인지를 미국인삶과 비교하며 조목조목 살펴본다.
그러면서, 미국사회에, 그리고 영화를 보는 우리들에게 묻는 질문은 이러하다.
'다른나라의 좋은제도를 가져와 우리삶을 바꾸는데 힘을 써봐라'
'우리삶은 이모양인데, 다른나라는 왜 가능한지를 들여다봐라'
'다른나라가 할수있는데, 우리는 왜 안되는건지 대답해보라'
영화는 미국사회에서는 도저히 안되는 삶이, 가능한 나라들을 소개하면서 '간절한 꿈'을 가지게 한다.
동시에, 눈물과 함께 우리나라 현실이 눈앞에 칼날처럼 스며온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유급휴가 8주. 아이들에게 먹이는 최고급 급식, 무료 대학교육, 숙제와 시험이 없는 교육, 처벌이 아닌 치료와 재생기회를 주는 사법제도, 자기역사과오를 잊지않고 기억하게 하는 나라, 여성의 눈으로 사회제도를 바꾸는 나라를 만난다. 부럽다는 마음이 한없이 부풀어오르면서도 우리현실이 칼날처럼 져며 스쳐가 눈물이 통곡하는 가슴위로 한없이 흐른다.
쉼없이 죽음의 일터를 견뎌야하는 우리가 지나가고, 저질급식을 먹으며 맘껏 놀지도 못하고 무한경쟁 그 터널에서 허우적되는 아이들이 보이고, 학자금빚에 삶이 저당잡힌 청춘들이 보이고, 금지와 처벌만으로 사회를 다스리는 정치현실이 스치고, 여성혐오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폭력과 살인위협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지나간다.
그렇다고, 영화가 슬프냐고? 그렇지않다. 그의 영화는 재미나다. 그가 가진 '희망'때문에 그러하다. '우리도 그런삶을 살수있다'고 간절하게 말하고 있기때문이다.
'제도'라는 건, 사람이 만든다.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잘못된것은 바꾸면 된다. (물론, 그 사회를 지배하고자 하는 자들이 만들었고, 무척이나 더디였지만 지배당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바꾸어왔다.)
무엇이 못바꾸게 하는지 들여다보면서, '되겠어?' ' 그게 가능해?'라는 질문이 아니라, 이미 가능한 나라들을 보여줌으로써 지금의 비참한 우리들 삶을 바꿀수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한껏 올려준다.
현실에 도망치고픈, 아니, 도망치치않고선 하루도 버티기 힘든 우리들에게 영화는 묻는다.
바꿀수 있으니 도망치치말고 바꿀수있는 삶에 대해 더 떠들라고 말이다.
얼마나 멋진가! 우리들삶을 바꿔달라는 그의 요구는 정당할뿐만아니라 당당하다.
마이클무어에게서 배울것이 있다면, 바로 이자세이다. '현실에 철저하게 뿌리내린 더 나은 삶의 요구'이다.
사실, 영화를 내내 보면서, 정치인들이 좀 봤으면 좋겠다싶었다. 그런데,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니다. 우리가 해야할 몫이라고 확신했다.
정치인들은 허공을 발딛고 살지만, 우린 현실에 산다. 현실에 사는 우리가 현실문제를 가장 잘알고 그 해답도 가장 정확하다. 우리가 해답을 모아내 정치인들에게 던져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현실에 발딛고 정치를 할수있고, 우리또한 더 나은 현실을 바꿀수 있다.
9개나라가 가진 그 멋진 정책들은 거져 누리고 있는것이 아니다. 피터지게 그들은 비참한 현실에 싸웠고 그 싸움끝에 누리고 있는 것일테다. 영화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그사회에 뿌리내렸는지까지를 다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간고한 싸움이 있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그것을 놓치면 안된다.
한치앞도 안보이는 우리들 삶. 그 갈갈이 찢어놓은 삶
어쩌다 이리되었는지를 다시 들여다보자. 그리고 '더나은삶. 그것이 가능해?'라는 도망자의 질문을 거두자.
더나은삶이 가능치않다면, 삶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영화가 마지막에 던져놓은 이야기처럼, '나'가 아닌 '우리'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보자.
꿈꾸는법을 잃은 우리들에게, 꿈꾸라고 권하는 영화이다.
무언가가 바뀔것이라는 가능성, 그 자체를 희망하지않는 우리들에게, 꿈꾸는법을 다시 가르쳐주는듯하다.
비록 그 꿈을 꾸기위해서는 너무나 도망치고픈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 곪아터진 상처를 만지듯 아프지만, 그상처가 썩지않고 아물게 하는 힘을 주리라고 믿게 해준다.
더나은 삶을 향한 우리들 꿈이 그 어디에도 좌절, 좌초하지않고 우직하게 꼬물꼬물 자랐으면 좋겠다.
꿈을 잃은, 희망을 잃은 우리들을 살려냈으면 좋겠다.
이 영화가 그런 소중한 바램을 시작해주리라 확신한다.
꿈이 무엇인지도, 꿈을 가꾸는 방법도, 꿈을 꾸는방법도 잃은 우리들에게 '더나은 삶 가능하니 맘껏 꿈꾸고 그 꿈을 누리라'고 알려주는 선물같은 영화다.
사실, 잔인한 현실에 도망치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가슴시리다. 가슴이 시려, 그 말조차 꺼내기가 아프다.
잠시 잠깐이라도 도망쳐 '숨'이라도 쉬면서 살아내기를 했으면 하는것이 오히려 더 간절한 소망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수있는일, 가장 잘할수있는일, 해내야 하는일은 '현실에 도망치치않는 것'이다.
그리고 더 빠르게 바꾸자면 '현실을 똑바로 제대로 그대로 마주하는 것'이다. 그것없이 '희망' '꿈'을 말하는 건 환상이요 거짓말중의 거짓이기때문이다.
우리가 용감해졌으면 좋겠다.
이 현실앞에서. 무너지지않기.
이 현실앞에서 두눈 똑바로 뜨고 서있기.
그리고 이 현실에서 뚜벅뚜벅 가능성을 향해 한발 한발 걷기
지옥에 하루하루 한시각 한시각 살아내기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힘겨운 요구다. 그래도 이런 바램이 우리들가슴속에 지펴지길 바래본다. 그것만이 우리가 사는이유, 그리고 희망, 가능성일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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