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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로> 찾기/오늘을 노래하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우린, 분노의 도로 그 어데쯤 서있는걸까?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이영화는 사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 속하는 장르가 아니다. 액션, 어드벤쳐는 그닥 내게 끌림을 주는 영화가 아니기때문에 언제나 선택에서 제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고야 말았다. 그리고, 이 영화에 매료되었다. 이 영화가 주는 울림에 나는 그만 영화관에서 멍하니 그 여운으로 오랫동안 앉아있었다. 


물론, 그 여운은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순간도 멈춰지지않고 있다. 무엇이 그리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지..나는 글로 남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조지밀러' 이분에게 크나큰 감사를 전한다. 이런 영화를 만든다는 건 재능이기도 하지만, 철학없이 만들수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의 철학이 만든 긴 여운과 울림, 감독의 재능이 빛나는 멋진 영화라고 감히 나는 말한다. (영화를 편협하게 보는 나로써는 이영화에 대한 찬사를 '감히'라는 말외에 평할수가 없다.) 


최고의 영화라는 것 또한 '감히' 나는 말한다. 영화가 가질수있는 상상력, 영화가 가질수 있는 철학, 영화가 가질수 있는 그 모든 것을 너무나 영화답게 담아낸 최고의 작품임을 말이다. 


"더 나은 자신을 찾아 황무지를 떠도는 우리가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영화 마지막에 올라오는 자막글이다. 그 질문이 내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아 나는 여전히 이 질문을 안고 있다.그리고 그 질문의 답을 영화의 처음으로 다시 돌려 내내 생각했다. 그러고나니 이 영화가 주는 이야기가 무엇인지..그제서야 떠오르기 시작했다. 


영화는 분명, 핵전쟁이후 망한 세상에서 벌어지는 또다른 독재를 마주하면서 그 참혹함을 담았지만, 왜 내겐 이 모든것이 오늘의 이야기 같은걸까? 황막한 사막 그 어딘가에 '분노'로 질주하는 '나'를 발견하는 걸까? 


지독히도 벗어나고픈 현실에 매일 도망치는 '나'같아서 나는 영화가 보여주는 상상력에 그만 오늘을 살고있는 나자신을 더 또렷이 보고 말았다. 이것이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이고 이 영화가 가진 최고의 마력이다. 


영화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인류는 물과 기름이 부족해서 싸우고 죽이다가 결국 핵전쟁으로 모든것을 잃고 사람들은 독으로 중독되어 인류의 생존은 반토막이 났다. 그나마 살아남은 자들은 물과 기름을 독점한 세력에게 삶을 저당잡혀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물'에 목숨을 걸어야 하기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여성은 독재자의 소유물이고 독재자의 '정상적인 아이'를 낳아야만하는 전유물이다. 

그여성들이 그세상을 벗어나고자 했고 다른 세상을 꿈꾸며 '시티델'을 도망친다. 퓨리오사가 납치되기 전의 땅 '녹색의 땅' '어머니들의땅'으로 질주한다. 이 사실을 안 '임모탄'은 자신의 소유물이 탈주했다며 미친듯이 추격한다. 오로지 그녀들이 낳아야하는 '아이'가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분노의 도로에는 지독하게 암울한 세상을 도망치고자 '검증할수없는 희망'의 땅을 향해 미친듯이 아니 강인하게 질주한다. 그리고 전부를 빼앗겼다는 듯이 독재자'임모탄'과 그 추종자 '워보이'들도 미쳐 날뛰며 추격한다. 



한편, 주인공인 맥스는 세상이 망해가는 그 속에서 '아이와 아내'를 지켜내지 못했고, 지켜내지 못한 그 죄책감에 '환영'들을 시도 때도 없이 마주하며 황무지 그 어덴가에서 헤매며 오로지 살아남기위해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중 그는 워보이에게 잡히고 그는 '피주머니'신세로 전락한다. 워보이들은 정상적인 몸이 아니다. 독에 중독된 몸이다. 정상적인 수혈이 없이는 살아있을 수없는 존재들이다. 맥스는 피주머니로 워보이(독에 중독된사람)에게 수혈할수있는 그나마 깨끗한 피인 셈이다.  

또한 이들은 '임모탄'(독재자)이 구원자라 철썩같이 믿고 있는 미친놈들이다. 독재자 그를 위해 죽고 그를위해 사는 존재들이다. 


워보이 녹스는 독재자 '임모탄'을 위해 탈주한 여성을 무사히 데려와서 임모탄이 선사하는 '구원'을 받고자 피주머니인 맥스를 끌고 추격을 시작한다. 그는 오로지 '독재자' 임모탄을 위해 목숨걸고 달려든다. 마치, 우리들 같지않은가?

돈을 위해, 불평등을 감수하며 그것이 행복인양, 구원인양 미친듯이 삶을 옥죄이며 떠돌고있는 우리들 말이다. 

또, 죄책감에 매일 시달리며 거친 사막에서 목숨줄만 연명하는 것외에 그 어떤것도 할수있는것이 없는 맥스(주인공)도 또다른 '나'다. 희망도 꿈도 없이 떠도는 우리같지 않은가? 내앞의 들씌워진 굴레외에 아무것도 보지못하고 그 누구도 믿지않는 '나' 말이다. 


그가 '분노의 도로'에 녹슨(워보이)의 피주머니로 얼떨결에 결합하면서 '자신의 굴레'만을 벗어던지기위해 싸운다. 영화전반에서 맥스의 굼뜨지만 잔잔하고 결정적인 변화는 또다른 '나'다.  



퓨리오사처럼 '녹색의 땅' 희망의 땅을 향해 질주하는 '나'이기도 하다. 퓨리오사는 독재자땅(시타델)에서 사령관이다. 그 지위면 부러울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독재자의 '아이'를 낳아야만 하는 여성들과 함께 '납치되기전의 땅'으로 달린다.

퓨리오사와 그 여성들은 어찌나 강인한지 모르겠다. 야리한 천 하나로 둘렀는데도 그들은 외모가 보여주는 것과는 다르게 너무나 강인하다. 어찌보면 사람의 강인함은 '성'이 아니라 '외모'가 아니라 '철학' 그래 '희망'인지도 모르겠다. 

그어떤 상황에도 무너지지않는 그 무엇을 가진 그녀들은 폭파와 전복이 난무하고 포탄과 총알이 쏟아지는 도로에서 그녀들은 두려움도 무서움도 그 어데하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녀들은 그녀자신들이 가고자했던곳을 향해 오로지 가는일 말고는 그 어떤것과도 타협하지 않았다. 



그런 싸움 끝에 그녀들이 마주한 '희망의 땅'은 역시나 였다. 그곳도 물이 없어서 풀 한포기 나지않는 썩은 땅이 된것이다. 이를 목도한 '퓨리오사'의 절규와 눈물은 나를 급기야 울려버렸다. 

나도 그렇게 원하던 희망이 사라질때, 그렇게 갈망하던 희망이 조각날때 무섭게 절규하며 울었기때문이다. 

아마, 황막해진 사막(희망의땅이라 여겼던)에서 퓨리오사의 그 외마디 절규장면은 두고 두고 기억날 것이다. 

왜냐면, 퓨리오사는 상당히 단단한 여성이다. 그어떤 감정이 표현되지않는 사람이다. 그 험악한 추격에도 그녀는 흐트러짐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러했기에 그녀의 절규는 더 소스라치게 가슴팍으로 다가왔다.



'독재자'에게서 도망친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녀들과 맥스는 다시 꿈을 꾼다. 아니 희망을 찾는다. 도망쳤던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곳에는 물이 샘솟고 채소를 가꿀 수 있기때문이다. 독재자가 독식하지않는다면, 바로 그곳이 희망의 땅이 될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마주한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질주한다. 


절망하기 전에는 서로의 요구가 달랐다.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을뿐이였던 그들은 이제 같은 목표, '희망'의 세상을 향해 한목소리로 달려간다. 그래서 그들의 연대는 더 뜨거웠고 그들은 더 단단한 행동으로 임모탄부대들과 싸워 시타델에 입성한다. 

임모탄이 그과정에서 허망하게 죽는 것이 조금 낯설지만, 악당이 오래도록 목숨줄을 연명하다가 어렵게 죽는건 더 싫다.


그리고 시타델에서 독점한 물이 콸콸콸 쏟아진다. 

싸움의 과정에서 몸에 큰상처가 난 퓨리오사와 이를 환호하는 대중속에 파묻혀있던 '맥스'의 짜릿한 눈인사로 영화는 끝난다. 


물론, 이영화에서는 격추장면을 빼놓을 수없다. 환상적이다. 영화보는 내내 생각하게 만든다. "어떻게 저런 영상을 만들었지? 진짜 대단하다." 이런 말이 마구 튀여나온다. 어디 그뿐인가? 중저음의 전자기타소리는 압권이다. 영화전반을 맛있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효과음이다. 거기다가 기타를 들고 춤추듯이 거대한 스피커앞에서 연주하는 빨간내복?워보이는 보는 내내,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분명 웃기는 장면이 절대로 아닌데도 말이다. 어찌 저런발상을 했지? 하면서 '감독'에게 보내는 감사의 웃음이다. 

뭐, 감탄장면은 그뿐아니다. 장대에 매달려 격추장면을 펼치는 건..정말 엄청난 구식같으면서도 엄청나게 세련되었으니..이어찌 넋놓고 안볼수있단말인가? 영화를 보면서 감독의 상상력에, 감탄과 찬사를 보내기는 처음이다. 최고다. 




정말 잘 만들었다. 그이상 표현할 말을 못찾겠다. 

그리고, 이 영화가 던지는 물음에 긴시간 생각하고 생각하다 나는 영화속에서 답을 찾았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저주스러운 세상에 도망치지 말고 '현실을 바꾸라'고 말이다. 

구원,희망 그 따윈 그 어디 먼 곳에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현실세계를 제대로 바꾸는일이라고 말이다. 


오늘도 이 미친 세상속으로 철저히 길들여진 '나'를, 

그도 아니면 이 미친세상을 도망치려고 세상분노를 다 담아 '허망한 희망'을 쫒아 미친듯이 달리고 있는 '나'를보게했다. 


'도망치는 건 답이 아니야! 우리가 살고있는 땅,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오늘을 바꾸는일, 그것이 답이야!'라고 이 영화는 말해주는건 아닐까?


영화는 미래의 세계를 그렸지만, 오로지 '어떻게 살것인가'를 되묻는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만든 영화, 오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 만든 영화이다. 그래서 나는 찬사를 아끼지않는다. 


오늘도 '분노의 도로' 그 어덴가에서 우리들의 시간과 삶을 낭비하고 있다면, 돌아보시라! 우리가 향할 곳은 어디인지를..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위해 우린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오늘을 마주하게 하는 멋진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아마, 오래도록 이 영화의 여운을 따라 나도 내게 물을 것이다. 


' 우리의 삶은 어디를 향해 가야하는지'를..






덧1, 사진은 DAUM 영화, 구글이미지에서 가져옴

덧2, 다행이 아직 영화상영을 한다. 빡빡하게 틀어주지는 않지만 볼려고 맘먹으면 볼수는 있다. 

    나처럼 편향적인(폭력영화,액션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권한다. 

    안보는 것이 더 손해라는 생각이다. 이 영화를 놓치는건 너무나 속상한 일이 될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