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출로> 찾기/잊지말아야할 날들

<세기의 교훈> 날강도들의 수법,결단코 잊지않으리라! <한성조약>

<세기의 교훈> 침략자들의 강도적 수법, 결단코 잊지않으리라. <한성조약>

 



지금으로부터 13519일 조선봉건정부와 일본은 갑신정변 후속처리를 위한 협정, 한성조약을 맺었습니다.

 이 조약은 내용에서부터 조작하는 과정까지 그 어느하나 강도짓이 따로없는 조작품이였습니다.

 

인류역사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나라간 협약과 조약을 맺어왔지만, 무력을 이용하여 나라의 대표자를 협박하여 조작한 조약이 그리 많지않습니다. 그래서, 국제법에도 무력으로 협박하거나 강박한 조약은 전면 무효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방에겐 권리만, 타방에겐 의무만을 쪼아박는 것도 호혜평등의 원칙에도 전혀 맞지않으며, 상대방의 의사가 상호간 충분히 반영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100년전후한 역사에는 무력에 의해 의무만을 쪼아박은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며 일방에게 희생만을 강요하는 불평등한 조약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조약을 맺은 날과달들이 너무도 많아, 2020년 첫달에 있는 '한성조약'으로 그 이야기를 시작해봅니다.

 

일제는 우리민족에게 헤아릴수없는 고통을 안겨준 인류역사에 전무후무한 특등범죄자입니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먹어삼키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덤벼들었습니다. 그 수법이 악랄하고 교활하고 잔인하기 그지없어 우린, 결단코 잊을수 없으며, 그 범죄를 온전하게 인정하고 사죄, 배상을 할때까지 하나 하나 똑부러지게 계산할 것입니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저지른 식민지36년은 우리민족 100만명 학살, 840만명 청장년들의 강제징용과 징병, 20만명의 여성들을 성노예로 강요하였으며, 수천년 고귀한 우리민족문화재와 귀중한 자원을 싸그리 강탈했으며, 말과 글, 이름과 성까지 없애는 치욕과 비극적인 삶을 강요했습니다.

 

식민지시절에 저지른 범죄행위도 이루 헤아릴수없지만, 식민지를 거머쥐기위해 벌인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치떨린 만행과 횡포는 극악하고 교활하였으며, 집요하였습니다.

 

19세기후반기는 구미열강들의 치열한 식민지쟁탈전이 벌어지던때, 자신들이 먼저 조선땅을 먹어삼키기 위해 수단과방법 가리지않고 덤벼들었습니다.

 

그 첫시작은 운요호사건.

처음은 조사명분을 내세우다가, 물을 찾겠다며 침략하여, 자위적조치를 취한 조선봉건정부에 협박해 강화도조약을 날조했으며, 임오군란때는 저들이 피해자라며 무력으로 협박해 제물포조약을 날조했습니다. 하나같이 조선반도를 먹어삼키기위한 침략조약을 하나씩 하나씩 날조해가며 침범해들어온 것입니다.

 

한성조약도 저들이 어떻게든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거머쥐기위해 갑신정변을 교묘히 이용해 실패로 몰아넣고 갑신정변으로 저들이 피해자라며 갑신정변의 책임을 묻는 조선정부에게 오히려 그 책임을 전가하였습니다. 실제 공관이 불이난것도 저들이 지른것이며, 인천으로 피신하면서 무고한 인민들을 학살한것도 저들입니다. 또한, 갑신정변도 저들이 돕겠다고 갑신정변인사들에게 심여를 기울여 추파를 던졌다가 막상 정변이 일어나자 약속한 궁보위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팽개치고 공사관으로 내뺐습니다. 실제 갑신정변을 이용하여 저들의 침략적야망을 실현시킬 좋은기회라 여기고 모의를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이미, 제물포조약때, 저들공관에 저들이 불지르고 그 피해를 묻는 조약을 해온터이고, , 강화도, 제물포조약때 저들말을 듣지않으면 무력을 인천으로 들이밀어 협박하는 것도 이미 해왔던 터라, ‘한성조약은 그 판박이로 일방적이게, 폭력적이게 쪼아박을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약 갑신정변 이후 조선은 일본에 정변 책임을 묻고 김옥균의 소환을 요구하였으나 일본은 오히려 조선의 책임을 물어 교섭할 것을 요구했다. 1885년 전권대신 이노우와 김홍집 사이에 전문 5조의 한성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약 내용은 ① 조선국은 국서로 일본국에 사의를 표명할 것, ② 피해 일본인에게 보상금을 지불할 것 ③ 일본 대위를 죽인 범인을 엄중처벌할 것, ④ 일본공사관 터를 제공하고 공사비에 충당할 것, ⑤ 일본 호위병의 병영은 공사관의 부지로 선정하고, 제물포조약 제5조에 따라 시행할 것 등이었다. 일본은 김옥균의 소환 요구는 거부했다.
한성조약으로 갑신정변에 대한 모든 책임은 조선에게 돌아왔고 일본은 이를 구실로 삼아 조선에 대한 침략을 한층 더 강화시켜갔다.



188412월 갑신정변을 청군의 도움으로 진압한 민씨정권은 예조참판 서상우를 특차전권대신으로 일본에 보내 일본측이 정변에 관여한 사실을 문책하는 한편 망명한 김옥균(金玉均)의 소환을 요구했다. 이에 일본은 청을 압도하고 새로운 침략의 발판을 구축하기 위해 공사관이 불타고 직원과 거류민이 희생된 사실에 대한 책임을 조선정부에 묻는 한편, 조선정부의 사죄와 공사관 소각에 대한 배상금 지불, 희생자에 대한 구휼금 지급을 요구하는 교섭을 강경하게 진행시켜갔다.

 

그뒤 일본은 갑신정변 직후 일본으로 피신했던 주한 일본공사 다케조에[竹添]를 조선에 파견해, 조선측 회담대표인 외무독판 조병호와 접촉했으나 타결책을 찾지 못하자 외무경 이노우에[井上聲]가 육군 2개 대대, 군함 7척을 이끌고 인천에 도착했다. 188512일 일본 전권대사 이노우에는 부대를 이끌고 서울로 들어와, 좌의정 김홍집(金弘集)과 협상해 188519일 김홍집과 이노우에 사이에 전문 5조의 한성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약 내용은 조선국은 국서를 보내 일본국에 사의를 표명할 것, 이번에 해를 입은 일본인의 유족과 부상자에게 보상금을 지불하고 또 상인의 재물이 훼손되고 약탈된 것을 변상하기 위해 조선국은 11만 원을 지불할 것, 이소바야시[磯林] 대위를 죽인 범인을 조사·체포하여 엄중하게 처벌할 것, 일본공사관은 새로운 장소에 옮겨 지어야 하므로 조선국은 마땅히 그 집터를 제공해 공사관 및 영사관으로 사용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할 것이며, 그 건축에 있어서는 조선국이 다시 2만 원을 지불하여 공사비에 충당할 것, 일본 호위병의 병영은 공사관의 부지로 선정하고, 제물포조약 제5조에 따라 시행할 것 등이었다.

 

이때 조선은 김옥균의 소환을 요구했으나, 일본은 인도상의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한성조약으로 갑신정변에 대한 모든 책임은 조선에게 돌아왔고 일본은 이를 구실로 삼아 조선에 대한 침략을 한층 더 강화시켜갔다. 이 조약에 따라 조선정부는 1213일 이소바야시 대위 살해범으로 김대흥(金大興원한갑을 처형하고, 20일 서상우를 전권대신, 묄렌도르프를 부대신에 임명하여 국서를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게 함으로써 갑신정변의 뒤처리를 둘러싼 조선과 일본과의 관계는 표면상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노우에는 일본 공사관 호위라는 핑계로 그가 데리고 온 병력 중 1개 대대를 조선에 주둔시킴으로써 이후 조선에 대한 일본의 침략은 날이 갈수록 강화되었다.


이토록 비법불법폭력적인 조약을 집요하게 조작한 강도일제는 이를 계기로 더 노골적인 침략적인 본색을 들어내며 조선땅을 통째로 먹는 조약(한일합방정미7조약한일의정서 등)을 날조합니다.





강도들은 원래 무력()으로 평화로운 상대방을 위협하여 생활,재산을 몽땅 빼앗습니다. 급기야는 목숨까지 거두어가지만, 지목숨 아니니 아까워하지도 안타까워하지도 않습니다. 죄책감은 커녕 상대방이 굽신거리지 않아서 죽은것이지 자기탓이 아니라고 합니다.

강도는 세상 모든 것에 제 것이고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자들이며, 저들말을 고분고분하게 듣지않으면 말을 들을때까지 그 무엇도 사건화해 겁주고 협박합니다.

 

상대방이 늘 굽신굽신거려야하고, 희생해야하며, 무조건 복종해야 만족해합니다.

그러면서도 상대방 목에 칼을 들이대고는 자신들이 상대방을 위해 큰희생한다며 고아대고, 다 뺏아가 가면서도 상대방을 위해서 그리하는 것이라면서 큰소리칩니다.

 

이런 강도들과 어찌 한하늘에 평안히 살수있으랴.

이런 강도들과 어찌 동맹이라 부를수 있으랴

제것을 지키기위해서는, 제목숨을 지키기위해서는 강도와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강도는 무력만 앞세울뿐 정의도덕도 없는 야수들입니다.

강도와 맞서 싸우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정의이며 도덕이고 힘입니다.

 



100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우리민족앞에는 강도가 우글거립니다.

백년간 우리민족에게 저지른 강도행위를 인정도 하지않으며, 사죄는커녕 침략을 미화분식할뿐만 아니라 재침야망에 불타 독도를 그 무슨 분쟁지역인양하며 영유권을 주장하질않나 수천년 불러왔던 동해를 일본해라 하질않나 그 무슨 저들이 위협당한다면서 무력증강에 열을 올리지않나 전범국으로 전쟁을 할수없게한 평화헌법을 뜯어고쳐 전쟁헌법, 침략헌법으로 기어이 개정하겠다 하질않나.

 

여기에, 셔먼호 침략, 조미수호통상조약으로 우리에게 침략의 마수를 오래전부터 뻗쳐온 미국.

일본과 공모해 일제식민지배를 두둔해주고, 분단선을 지맘대로 그어놓고 그누구도 청하지않았는데 점령군으로 조선반도에 들어와 제주도민을 처참하게 학살했고 특등범죄자인 친일파쓰레기들을 죄다모아 정치세력으로 등장시켜 분단정부를 조작하고 침략적인 반북반공에로 몰아 민족상잔의 비극을 몰아왔으며, 전쟁을 빌미로 군통수권을 빼앗아 아직까지 내놓질않고 있으며, 수많은 불평등 군사조약, 경제조약을 맺어 노복으로 종으로 부려먹으면서도 그무슨 평등하고 대등한 나라간의 관계인양 떠들며, 70여년 단한푼의 주둔비도 내지않던 자들이 오늘날 천문학적인 방위비분담금을 내놓으라 하는 날강도 미국이 있습니다.

 

참으로 저들 맘대로 동맹입니다. 저들 말 들을때는 동맹(호구)이고, 저들 말 안 들을때는 잡아먹을 듯 달려들어 겁박합니다. 몇 개월전 한미군사정보협정파기를 결정하니 미고위급인사들이 제집드나들 듯이 밀고 들어와 협박을 하여, 유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한 나라가 고심 끝에 결정한 것을 강박과 협박을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해 하다니... 날강도의 광기라고나 할까.

저들의 이익에 손톱만큼이라도 흠집이 가면 호들갑이면서 우리가 희생한 것(빼앗긴 것)에 대해서는 당연한것이라 여기니, 어찌 분노치 않으랴!

 

지난 100여년(세기)의 역사는

날강도에게 빼앗기고 농락당한 역사이고

앞으로의 100년은 날강도에게 떳떳하게 맞서싸우며 자주의 새길을 가는 역사를 써야 합니다

남의것을 빼앗아 저들만 행복과 번영을 누리려는 날강도가 있는한, 그 싸움은 멈출수없습니다. 

그건, 우리들생활, 생명,재산, 미래를 지키기위한 오늘날 우리들의 정의로운 자위권이며, (100여년)세기의 피어린 교훈이며, 우리민족의 100여년 숙원입니다.

 

강도에게는 하나 내주면 두개 세개 더 크게 빼앗깁니다. 왜냐?연약한줄알고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강도에게는 주고 받는 관계가 없습니다. 모든 이익은 강도가 차지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와 나누어갖는걸 싫어합니다. 그래서 날강도라 부릅니다.

 

, 오늘 우리앞에 칼들고 춤추는 날강도들, 어찌할까?

100여년전 강도나, 100여년후 강도나. 무엇이 다를까?


그옛날 힘없던 조선봉건정부의 인민이 아니다. 

피어린 지난 세기의 교훈으로부터 자주로 새세기를 열고자 갈망하는 21세기 우리는 

우리의 뼛골까지 빼앗는 날강도에 맞서 더 떳떳이, 더 당차게 싸워, 우리 생명, 존엄, 생활을 기필코 지켜내리라.